지현, 모빈, 국한, 시원, 승승, 준형, 태웅, 수민, 수인, 다흰, 예진, 희연, 은, 샘, 미소, 평화, 만세, 다비드, 조이, 준예, 벤, 발렌틴, 헤이즐, 미카, 레아, 렉시, 로이, 프리즈마와 킷캣 그리고 내가 일한 모든 클럽 식구들, 만타, 버섯요정님들, 마리오 농원 식구들, 지선, 하경, 연두, 지영, 지영, 기철, 수현, 엄마, 아빠, 외할머니, 친족들, 의성, 신영, 애기, 도나 해러웨이, 베니 샤프디, 서동진, 이영준, 김성희, 리타, 이진실, 조르조 아감벤, 칼 마르크스, 로자 룩셈부르그, 그라임즈, 마녀, 미치광이, 안나 칭,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안, 에일리언, 창녀, 존 워터스, 에릭 보들레르, 에두아르도 윌리엄스, 호 추 니엔, 폴 토마스 앤더슨, 피에르 위그, 강정석, 앨 앨버레즈, 이자혜, 김언희, 요한나 헤드바, 밤섬해적단, 우메즈 카즈오, 김희천, 히토 슈타이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궤도, 이병건, 미셸 푸코, 줄리아 뒤쿠르노, 이세돌, 제임스, 브베, 메이 제미슨, 이창동, 머신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코난 모카신, 가스파 노에, 김추자, 발터 벤야민, 해리 G. 프랭크퍼트, 니콜라스 케이지, 김준평, 영화, 역사, 자연,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땅, 대지, 지구... 보고, 듣고, 읽고, 만나온, 미워하고 동시에 사랑한 모든 것, 내가 살아갈 힘을 준 이 세상 모든 것에게.

♧ 행운의 편지 ♧

어제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날뻔했다.

사건이 일어날 뻔 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마주할 뻔 했다. 자살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너도 나도 모두가 그 모든 ‘사건’에도 아직까지 기어코 살아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이 위기, 현실이 될 뻔했던 사건이 우리의 삶 속에서 찰나의 일시적 사건으로 어제 밤 그 시간에 하늘에서 솟았는지 땅에서 솟았는지도 모르게 불현듯 나타나 우리를 화들짝 놀래키고 종적을 감춘 하나의 벼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만 피하면 끝나는 벼락이라면. 안타깝게도 위기는 그 자리에 서서 기어코 모든 것을 서서히 잠식한다. 공포에 질리게 하고, 항시 불안에 떨게 하며,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어주도록, 절벽 끝까지 내몰려 모든 것으로부터 항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산 채로 죽었다.

지난 9월 중순쯤부터 나는 ‘자본’을 끝장내고 말겠다며, 혁명을 실행하고 말겠다며 메니페스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평생 시달려온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던 문제들이 사적 드라마 속에서 퍼즐 맞추듯 제 자리를 찾아가더니 그림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행동, 판단, ‘신념’을 방해하는 자기혐오의 의심을 뚫고 그 그림이 내게 말했다. ‘씨발 그만 좀 의심 쳐 하고 다녀. 내가 여기 정답 던져준다. 자본이 씹새끼다. 믿거나 말거나 그게 사실이다.’ 나는 그 퍼즐들을 언어로 번역하기로 했다. 그림은 이미 모두가 봤다. 그 그림이 사실이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 꼭꼭 감춰둔 마음속 진심을 타인의 목소리로 보여주는 것, 현실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증명과 증언, 그리고 설득만 하면 된다. 그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게 그 뿐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진실’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그림은 말그대로 ‘그림’이라서 이게 이미지인지, 환영인지, 귀신인지, 아니면 진짜 현실인지 모두가 존나 헷깔려한다.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저 현실에 적응해서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따금 쿡쿡 쑤셔오던 현실이 나를 내리치는 해머가 되고, 언제부턴가는 옴싹달싹 못하게 짓눌러 침대든 아스팔트 바닥이든 그저 납작하게 누워있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시간이 너무 길었고, 너무 자주 찾아왔다.

자본이 죽일놈의 새끼라는 이 그림은 빈부격차, 경제침체, 금융위기, 기후위기, 전쟁, 식민주의,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 등 각자의 삶에서 각자 다른 형태의 현실로 경험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더이상 고통을 피하기위해 내게 소중한 것을 소중하지 않다고 내 자신을 기만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의 모든 진실은 나를 매번 빗겨나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부활한 예수의 상처에 기어이 손가락을 쑤셔넣는 도마처럼 진실을 바라보려 할 수록, 진실을 찾아다닐수록 나는 너덜해졌다. 그딴건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 멈춰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만 남을 뿐이다. 믿으면 그게 사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한 친구 말대로 안 보이는 것들은 안 보이는 이유가 있다. 없어서 안 보이거나 끔찍해서 보지 말라고 감춘 거다. 나는 그걸 말 그대로 ‘무서운게 딱 좋아!’ 하면서 기어코 쫒아다녔다. 이제와서 진실이라고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의 감각과 그 흔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조건적인 믿음. 사랑 뿐이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 한때 내가 진실이라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의 존재 뿐이었다. 이 감각을 설명하기위해 그 단서들을 따라가다보면 그곳에는 그동안 망각했던, ‘잃어버린’ 기억. 트라우마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의 역학관계들을 따라가다보니 자연스레 당장 현실에서 다같이 실행할 수 있는 행동전략이 나타난다. 무슨 트라우마? 어느 트라우마? 적은 누구? 무엇이랑 어떻게 싸우는가? 그런 질문은 지금 의미가 없다.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전쟁에 죽고, 다쳐서 죽고, 아파서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일하다 죽고, 자살하고, 그 누구도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즉시 모든 것을 멈추고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며 솔직하게 말하고, 듣고, 각자의 이해를 교차검증하는 일이다. 우린 ‘과학’과 ‘진보’, ‘합리’의 망각속에 신체와 정신이 망가진지 오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이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증명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점진적으로 대를 이어 가속되어 인식조차 어려운 규모가 되어버린 위기와 불안에 적응한지 오래. 안전과 평화는 프로파간다가 휘두르는 모욕이 되었다. 우리가 ‘지닌’ 평화와 안전을 유지해야한다는 망상속에 이미 모두가 판단능력을 상실했다.

나는 오래전에 좆됐고, 여전히 좆됐으며, 점점 더 좆돼가고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한다. 자기연민으로 읽힐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피해가며 덤덤하고 객관적인 이야기의 서술을 통해 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심지어 학술적으로 보이는 글을 쓰려고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교육받은 정상인’처럼 말해야 눈길 한번이라도 주고, 내 말을 조금이라도 들어줄테니. 그런데 이제 그딴것도 더이상 필요없다. 그만큼 급한거다. 이게 나이브하고, 게으르고, 멍청하고, 징징대고, 자신의 과오를 남 탓으로 돌리는 소리로 들린다면. 그래. 니 좆대로 생각해라.

20대 내내 월세, 생활비, 학비를 벌어가며 근근히 생활했다. 남들은 어떻게든 잘 해내는 것 같은데 어쩐지 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해낼’ 수 없었고,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매일 허덕이다 금세 지쳐서 며칠이고 앓아눕는 생활이 평생 반복됐다. 매일 14시간은 자야했고 그나마 깨어있는 시간 동안에도 기절할듯이 졸렸다. 브레인포그로 생각의 연결이 불가능해 글 한문장 쓰는 데 한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A4용지 한장짜리 레포트 과제를 작성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리고, 그마저도 완성할 수 없어 제출일을 미루거나 포기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하는 기본적인 것’마저도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공부든 일이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등의 ‘당연한’일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매번 똑같이 새로워 시작도 전에 낡아버린 다짐들과 재활하는 기분으로 살아갔다. 왜 매일매일이 재활하는 것 같은지. 왜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쌓아도 쌓아도 부서져 매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지 영문도 모른 채.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실제로 매일 재활해야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렇다. 그 사이 많은 것을 잃었다.

돈을 아무리 긁어 모아도 당장 수중에 2만원도 없어 내일 밥값, 교통비 걱정에 시달리는 생활이 몇 년이고 지속되자 이 불안 속에서는 창작(그래요. 나는 예술충이다), 일, 학업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활비도 부족한데 재료비가 있을리가 없다. 실패비용이 없는 디지털 영상만이 내가 쥘 수 있는 재료였다. 노트북은 있고, 카메라는 학교에서 빌리면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다. 영화가 좋았고, 이미지의 연속적 배치로 관객의 무의식을 ‘조종하는것’이 좋았다. 한편, 이러다 졸업작품을 도저히 완성할수 없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이 파산을 겪으며 수입은 커녕 빚만 미친듯이 불어나고있는 상황을 알면서도 월세와 최소한의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발 딱 3개월만, 80만원씩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학부생활 내내 작업 단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는데 그렇게 졸업작품 하나만큼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완성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알바를 하고, 전시 기회를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한편 경제적 기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모두가 알고 있듯 미대 졸업장은 취업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래도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난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게 있을리가 없다. 학부때 코딩수업이 재밌었고 박근혜, 문재인 정권동안 ‘디지털 뉴딜 정책’이라는 것을 정부에서 추진하며 코딩과 관련된 일자리 교육 지원이 쏟아졌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기로 했다. 더이상 돈때문에 불안에 시달리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이고 나발이고 돈이나 벌자. 이러다 진짜 죽겠다. 가난한 주제에 재능도 없으면서 일은 안하고 이상만 쫒으며 징징거리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도 지겨웠다. 나도 나를 계속해서 의심했다. 내가 정말 ‘그런 인간’이면 어떡하지? ‘정상 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막차를 놓치는게 아닐까? ‘해보지도 않고서 신세한탄이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증명하고 싶었다. 나도 하면 된다. 일단 해보자. 아니면 나중에 가서 결정해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치스러운’ 예술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수 있다. 복잡한 서류들을 취업센터와 학원을 오가며 작성하고 몇 주간 승인을 기다린 끝에 주 5일 6개월간 매일 8시간 수업을 들었다. 정부에서 수업료를 전액 지원했고 교육비 명목으로 50만원가량의 현금도 매달 지원했는데, 그 돈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일을 하면 수입이 있다고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주말마다 몰래 클럽에서 현금을 받고 밤새 일을 하며 6개월을 보냈다. 기초생활수급도 국가가 인정하는 명확한 장애가 없는 ‘건강한’ 20대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교육비와 같은 이유로 받아도 문제였다. 두가지 지원을 동시에 받을 수도 없다. 하여튼, 한국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 요구하는 ‘기본적인’것들이 참 많은데 그 ‘기본적인’것을 지켜가며 생활을 영위하기에 50만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의 고시텔 쪽방 하나 월세가 당장 50만원이다.

한국의 도시생활은 모든 것은 돈을 경유해야만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이 없으니 살아있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것처럼 느껴졌다. 매순간 죽고 싶은 건지 죽임당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국민건강보험이 아무리 좋아도 내게 주어진 돈으로 기본적인 생활 유지 자체가 어려우니 아플때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난 국민이 아닌가보다, 적당히 웃어넘겼다. 돈이 없으니 싼 집을 어떻게든 찾아서 들어갔는데 싼 집들은 다 이유가 있었다. 집에 뭐가 고장나면 고칠 수가 없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면 ‘내가 그걸 왜 해줘야 하냐’고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 가난해서 미치는건지, 미쳐서 가난해지는건지. 가난한 환경에 있으면 미친 사람들과 부대끼며 비상식과 광기, 폭력속에 살아가게 된다. 물론 나도 미쳤다. ADHD약을 먹어야 사람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니 그것만은 어떻게든 지속하려했다. 노동으로 돈을 벌어 생존해야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습도에 숨이 막히는 여름이 오면 최고온도가 40도를 찍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에어컨을 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몸은 기운없이 흐느적거렸다. 머리는 어지러워 의식을 잃을 듯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에어컨 없는 여름을 3번 버텼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자잘하게 받은 대출들이 더 큰 위기가 되었다. 취업을 하고, 회사를 관두고서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고 벌어서 갚으면 된다. 근데 내 상태가 더이상 그게 불가능해졌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했다. 약을 먹고 머리에 힘을 존나 줘서 아픈 정신만 어떻게 ‘이겨내면’,  조금만 더 고생해서, 조금만 더 노력해서 당장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면 괜찮을 줄 알았다. 다들 대출받아가면서 그렇게 산다. 이건 ‘일시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 미래를 위한 자금이다. 그런데 이제 몸까지 아프고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게 명확했다. 항상 신체로부터 분노, 우울, 슬픔과 같이 뱃속이 꼬이고 심장이 죄어오는, 핏기가 가시거나 머리에 피가 쏠리거나 하는 생체신호가 보내는 끔찍한 감정상황들을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고, 그 인식이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만드는 지표가 되었다. 벗어나고 싶은 끔찍한 기분, 고통이 내가 통제할수 없는 형태로 반복되자 내가 어떤 고통에 지속적으로 시달릴 때에는 결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대상의 마음을 이해해야만 편안해질 수 있었다. 상처를 헤집고 고통을 끝까지 마주해야, 끌어안아야 비로소 편안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감각이 내 곁을 떠났다. 신호가 고장난 것이다. 점진적으로 진행된 증상과 그 시기를 나누는 무수한 지점들 속에서 나는 트라우마를 발견한다.

언제부턴가 통제되지 않은 감정의 표출이(분노/행복/슬픔 이런 거 상관 없이, 부정정인 것이었건 긍정적인 것이었건) 내게 폭력이 되거나 우습게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앞으로는 모든 것을 무조건 생각, 이성으로 판단하기로 결심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먼저 생각을 통해 상황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들여다보면 감정이 잦아들고 내가 선택할수 있는 말과 행동, 방향이 나타났다. 폭력적이지도, 우습지도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집착. 조금씩 성숙해지면서 내가 느끼는 다양한 ‘우스움’은 오만이었다는 것을 다행히 깨닫고 부끄러운 순간도 많았던 한편 모든 오만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양철인간, 로봇, 뱀파이어가 되기로, 머릿속으로 삶의 결론을 내리듯 결심한 순간. 나는 그 사건을 인천에서 고통받던 청소년에게 자연발생한 인식론의 승리었다고 종종 친구들에게 설명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속된 우울증과 함께 켜켜히 누적되어만 갔던 PTSD가 신체에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싸움-도피반응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분리감, 해리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단순히 이해해서, 이제서야 조금 편안해진줄 알았는데, ‘정상’에 가까워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매번 트라우마를 하나씩 더 쌓아가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는 감히 자신을 예술가로 호명한다. 게으름인지 현실의 벽인지 재능의 부재인지 계속해서 유예되기만 하는 창작활동과 그나마 완성한 영상 ‘작품’들은 나조차도 그 내용과 의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그동안 무슨 말을 꺼냈던 것인지, 왜 그렇게까지 집착적으로 ‘무언가 만들어야만 한다’는 기분에 시달렸는지 안다.

예술가로 성장하는, 예술가로 키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이 무엇이고 뭐가 ‘진짜’ 예술인지 아닌지 그 기준은 뭔지 그런 건 상관없다. 이건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예술가’라는 직업과 정체성으로 살아가야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만 존재할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야만 자신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과 일자리가 존재한다. 예술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당장 굶어 죽겠는 마당에도 예술가로 살아가려고 하거나 다른 직업을 택해 살아가면서도 가슴 한켠에 예술가의 꿈을 안고 살아갈까? 그것은 우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예술을 하던지간에, 내가 느끼기엔 결국 우울 속 고통이 이상을 꿈꾸게끔 만드는 역학을 발생시킨다 . 히토슈타이얼, 카디비, 고흐, 브베, 이자벨 아자니, 스윙스, 데이빗 린치, 월미도 공원에서 캐리커쳐 장사를 하는 사람, ‘운좋게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걱정없이 예술이나 하는’ 사람. 개인이 느낀 부정적 감정, 우울의 감각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합당’했던지간에 감각만큼은 진실되게 현존한다. 그리고 그 누가 그 무슨 이유로 예술을 하고 그것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간에, 내가 보기에 결국 우울하고 우울할수밖에 없었던, 실존적 위기를 겪은 사람들만이 예술을 꿈꾸고 예술가가 된다.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예술가, 창작자가 되고 싶어한다. 모두가 DJ고, 작가고, 페인터고, 음악하고, 타투이스트고, 유튜버고, 인플루언서고… 예술을 하는 것과 예술을 직업으로 택하는 것, 예술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각각 다른 일이다. 이 말이 어떤 관점과 태도에 위치해 있는지와 관련된 의심은 살짝 걷어 놓고, 일단 같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한번 봐보자. 지금 현상적으로 예술하는 사람, 예술을 업으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게 사실이다.

얼마전, 오랜 세월 내가 컴플렉스 PTSD로 인해 극심한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내 정신과 신체가 대부분의 세월동안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만 30살 생일을 4개월 앞둔 시점에 깨달았다. 우울증은 내게 있어 최초의 기억부터 함께해온 지긋지긋한 환상친구이자 오랜 인생의 숙제다. 죽음 충동, 자기파괴의 충동은 삶의 매 순간 내 모든 표면, 그러니까 피부와 구멍속에 딱 달라붙어 아무리 씻어내도 씻어낼수 없이 찐득하게 눌러붙어 숨을 가로막아왔다. 그 충동과 우울이 불러오는 신체적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 모든 감각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발생되는 것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남의 집 자식에게 관심을 갖는 어른은 결국 어른이 되지 못했거나, 그들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보거나, 그들을 욕망하거나. 자신보다 한참 어린, 그러니까 ‘어른’으로부터 이질적인 존재,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어른. 그것은 돌봄과 치유의 형태가 되기도, 폭력과 착취, 학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과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의 근간을 구성하는 시기. 아동-청소년기에 방치되고 불가항력에 의해 친족으로부터 분리 혹은 단절을 경험하거나 오히려 이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과 닮은 것을 찾고, 인식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바라는 사회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바람직한’ 과정을 겪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한편에는 닮은 것을 찾을 수 없어서. 혹은 나와 닮은 것이 끔찍해서. 닮고 싶지 않아서 ‘아닌 것’으로 자신을 덕지덕지 구성하는 과정을 겪는, 얼기설기 구성된 자아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한 친구는 자신의 그 자아를 자조적인 태도로 바빌론의 탑에 비유하곤 한다. 여차저차 살다가 뒤를 돌아보니 인간이라면 응당 해야하는 것,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것, 원래 그렇고 그런 당연한 것, 사회적 합의와 약속 등 그 어떤 것도 하나도 못(안)지키고 대충 눈치로 따라하는 척 시늉만 할 줄 아는 ‘사람’. 문이 있을 자리에 문이 있고 벽이 있을 자리에 벽이 있는데 조금만 주의해서 바라보면 형태만 갖춘 모양새. 문은 문이고 벽은 벽인데 문으로도 벽으로도 그 어느것으로도 기능하지 않는, 그냥 그런 모습으로 거기에 있는, 시늉만 겨우 해내는, 다급하게 일단 쌓아 올리듯 부실공사로 이루어진 인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좋은 일, 슬픈 일, 기쁜 일, 힘든 일 등 다양한 사건과 경험을 겪는다. 사람은 누구나 복잡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보던 주관적인 태도로 바라보던(객관과 주관마저도 허상에 불구함에도…) 결국 사람은 지나온 삶의 시간속에서 상황과 감정에 대한 총체적 인지를 뜻하는 ‘인생사’를 누구나 갖고 있다. 과거의 축적이자 매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유기적 현존을 사회속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정의내린, 누가 뭐래도 나 만큼은 정의해야만 하는 자아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식을 구체화하고 생각과 인식을 연결하는 작업, 즉 복기 혹은 회상을 통해서, 혹은 꿈과 같은 무의식 속에서,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능동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해간다. 한편 당연하게도 ‘사회적인 인간’을 만드는 ‘긍정적 경험’과 ‘반사회적인 인간’을 만드는 ‘부정적 경험’이 각각 명확하게 구분, 정의할수 있는 형태로 한 개인의 삶에서 전개되진 않는다. ‘좋은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고통도 슬픔도 없이 모든 것이 ‘좋은 것’인 곳은 천국과 같은 유토피아 뿐이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없는(ou-)'과 '장소(topos)'를 합쳐 만든 말로, 말 그대로 없는 장소, 비현실적인 장소를 뜻한다. ‘좋은 것’만 존재하는 세상, ‘좋은 세상’이라는 말의 공허함. ‘유토피아’라는 단어속에 그 아이러니가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러나 그 장소, 우리가 상상하는 그 미래가 비현 실적이며 당도할 수 없는 ‘없는 공간’이더라도.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말하는, 우리가 바라는 머나먼 비현실을 현실로 끌어당기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건, 경험, 이벤트, 상호작용 그 자체는 어떤 가치도 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인식하기에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이라는 것이 있고, 그 중 어떤 것이 어떤 형태와 빈도로 개인의 삶 속에서 발생했는지에 달려있다. 양날의 검, 동전의 양면, 종이 한장차이라는 말이 있듯 모든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고 한 개인 안에서 ‘긍정적인’ 경험 혹은 영향으로 발생할수도, ‘부정적’으로 발생할수도, 혹은 이런 양자택일의 가치판단이 이루어지 않거나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유로 그냥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사건과 경험을 단순히 인지하고 흘려보내는 사건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사건, 경험이 긍정적인 것이었는지 부정적인 것이었는지 자기 자신조차도 구분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기억과 경험도 흔하다. 애초에 경험이라는게 그렇다.

퍼즐을 번역하는 일. 이것은 경험을 말하는 일이다. 시간을 말하는 일이다. 오즈의 나라, 원더랜드를 헤매다 사자, 로봇, 허수아비, 마녀, 토끼, 트럼프 병사들, 뱀파이어, 에일리언, 프랑켄슈타인, 귀신, 무당, 사이보그랑 지지고 볶고 싸우고 죽이고 친구먹고 밥먹고 자고 맞고 때리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무너지고 모든 것에 항복하고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 파국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 둘리가 엄마찾아 얼음별 대모험을 떠나는,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여정끝에 되찾은 잃어버린 기억을 말하는 일이다. 현상을 말하는 일이다. 역사를 말하는 일이다. 자연을 말하는 일이다. 감각을 말하는 일이다. 찌그러지는 일이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매트릭스의 환영이 찌그러져 이제 그 모든 것이 데이터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알리는, 공포 영화의 점프스케어처럼 방심한 사이 관객을 화들짝 놀래키는 두려운 미지의 신호. 우리가 더이상 인식하지도, 감각하지도, 바라보지도 않는 경고를 말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일이 이렇게나 자기파괴적인 일인지. 나는 내게 많은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알고 있었고, 그것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삶의 큰 숙제였다.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일은 매번 내 안의 부끄러움과 슬픔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내가 나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남들에 비해 유난히 더 괴로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심한건지, 내성적인건지, 내향적인건지, 찐따인건지, 이런걸 부르는 이름은 많고 많아도 막상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자신감을 갖고, 좀 흘려 보낼줄도 알아야 하고, 바쁘게 살다 보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이겨내고 더 강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그런데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다. 나도 좀 흘려보내고, 용서하고, 앞으로 더 ‘잘’하고, 자신감, 자존감을 키우고 그러고 싶은데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나도 바깥도 공격한다. 내가 ‘남보다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할순 없었다. 일단 현상을 인정하고 취한 전략: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든 추악한 지점들을 신속히 밝혀내기. 미래의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제거하기. 미래의 내가 부끄러운 일은 남이 봐도 부끄러운 것일테니 남에게도 나에게도, 나도 모르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남에게 들키기 전에 내가 빨리 알아내야 했다. 언제나 슬픔이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슬픔을 프로세스해야 하는데, 그 슬픔의 과정이 자기연민으로 돌아와 기어코 또다시 내가 나를 때려눕힌다. 내가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슬픔이 삐져나온 내 모습을 들키는게 두려웠다. ‘정신나간’ 행동을 하니까. 나도, 남들도, 그러니까 끔찍하게 사랑하는 이들마저 나때문에 상처받는다. ‘추악한’게 무엇인지 모르는게 함정이다.  그러니까 뭔지 모른다는걸 알면서도 그런게 있다고 믿고 그게 뭔지 찾아다닌거다. 또 파국서사다.

‘그 어느 부분에서도 추악하지 않은 더 나은 인간’이라니. 그 생각이 자기 자신에게 향했더라도 ‘니가 히틀러냐?’ 생각하면서, ‘자 이제 그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감정을 멈출 수 없었다. 통제되지 않는 강렬한 내면의 감정은 자연재해처럼 현상적으로 끊임없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당연히 자꾸 남에게도 그러게 된다. 미워하면 미워하는 나도 미워지는걸 알아도, 만인은 평등하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내가 뭘 모르고 잘못했나? 이 사람이 잘못한건가?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 무슨 말을 해야하지?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그것 만큼은 지켜야 한다 폭력 저지르지 말자 내가 무너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그걸 알았으면 애초에 내가 이런 인간이 아니었겠지 한심한 생각 그만하자 뇌에 힘주자 정신차리자 당황하지말자 상황을 좀 이해하고 판단해보자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그렇게 편집증적으로 내 트라우마를 알아내려고 하면서도 트라우마가 정확히 무엇인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사람에게 작동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정신적 외상이나 충격적인 사건, 하여튼 외상을 입으면 정신에 큰 피해를 입고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을 겪으며 PTSD에 시달리게 된다는 말은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듯 했다. 피해는 무엇이고 스트레스 반응은 무엇이며, 그로인한 장애는 또 무엇인지…

세상엔 트라우마의 종류가 참 많다. 역사로 기록될만큼 거대한 규모의 숫자로 사람들에게 외상을 입힌 트라우마들이 있는가 하면, 가정의 규모로 벌어지는 트라우마, 봄바람에 날아온 송충이가 얼굴에 달라붙어 깜짝 놀란 어린이에게 생긴 트라우마도 어쨌든 트라우마는 트라우마다. 그 종류가 너무 방대해서, 개별적이고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서 뭐가 트라우마였는지 개인이 혼자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트라우마인가? 아닌가? 내가 오버하는건가? 이건 트라우마고, 저건 엄살이고, 저건 자기연민이고, 저건 트라우마 맞는데 그렇다고 트라우마 반응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게 트라우마다. 트라우마가 트라우마인지 구분할수 없게 되는게 트라우마다. 그게 트라우마가 하는 일이고, 기억을 ‘잃는’ 일이다. ‘정신에 큰 피해를 입다’는 말의 ‘피해’가 이걸 뜻하는 거다. 순간의 기억이, 경험이, 사건이 좋았는지 싫었는지 슬펐는지 화났는지 그게 나한테 무슨 감정이었는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무슨 상황이었는지 뭐였는지 당최 모르겠는거다. 왜 모를까? 내가 뭘 모르고 있는 거지? 왜 이해가 안되는거지? 뭘 더 공부하고 알아야 이걸 이해할 수 있는 거지? 뭘 알아야 하는거지? 이미 알건 다 아는 것 같은데, 그저 내 오만인가? 멍청해서 그런가? 지능이 낮아서? 우울증 때문에? ADHD 때문에? 합리적 인간이 되기 위한 합리적 결심. ‘감정 속의 숨겨진 진실을 이해(=생각, 신체를 배반하는 트라우마의 함정)하겠어!’라고 16살 쯤 영화에서 으레 판사가 망치를 땅땅 내리치는 것처럼 결심했을때만 해도 그게 나를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보호하고 인도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능력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우울증이 오래 지속되면 뇌기능이 떨어져서 지능도 낮아지고 기억력도 나빠진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진짜 그런가보다, 올게 왔다고 생각했다. 인지능력이 떨어진거다. 몸이 보내는 감각신호가 고통스러워서, 더이상 감당할 수 없어 의식적으로 차단하고 무시하다 언제부턴가 신호를 읽는 법을 진짜로 잊어버리게 된거다. 그런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거다.

공포 영화, SF 영화, 판타지 영화는 이 망각의 헤프닝, 감각과 공감의 문제를 비인간 존재, 환상의 존재, 현실에 없는 존재, 귀신, 환영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돌림노래처럼 반복하는 장르다. 없는데 있는 것. 트라우마, 외상적 사건, 고통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 모든게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없는걸 있다고 생각하는 것, 믿는 것이 현실이 된다. 관측되면 인지를 통해 학습하고 그 학습이 도출한 ‘인지적 결과’로서의 이해, 판단, 정의가 사실을 만든다. 사람은 사실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분열된 사실이다. 현실은 분열된 사실과 분열된 무수한 행동 속에서 만들어진다. ‘PTSD에 시달린다’는 말의 함정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없는 것에 시달리는 것이다. 무언가로부터 시달리는것은 사실인데 ‘무언가’가 뭔지 알 수 없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고통의 감각을 두려워하는 것,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다. 알아도 시달린다. 그 사실을 부정할수는 없는 거다. 없는데 있으니까. 매일 매 순간 나타나니까. 모든 것을 파멸시키니까. 그게 나고, 내 기억이고, 친구고 가족이고 적이고 동료고 ‘현실’이니까. ‘있는 것’은 결국 불안과 신체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감각 뿐이다. 그것만이 현존한다. 그런데 보여줄 수가 없다. 증명할 수가 없다.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학’으로 관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해’와 ‘논리’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해와 논리, 그 학습이 모든 것을 가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지우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없는 것, 있었던 적도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