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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운의 편지 ♧

어제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날 뻔했다.

사건이 일어날 뻔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마주할 뻔했다. 자살하지 않아 천만 다행이다. 너도 나도 모두가 그 모든 ‘사건’에도 아직까지 기어코 살아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이 위기, 현실이 될 뻔했던 사건이 우리의 삶 속에서 찰나의 일시적 사건으로 어제 밤 그 시간에 하늘에서 솟았는지 땅에서 솟았는지도 모르게 불현듯 나타나 우리를 화들짝 놀래키고 종적을 감춘 하나의 벼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만 피하면 끝나는 벼락이라면. 안타깝게도 위기는 그 자리에 서서 기어코 모든 것을 서서히 잠식한다. 공포에 질리게 하고, 항시 불안에 떨게 하며,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어주도록, 절벽 끝까지 내몰려 모든 것으로부터 항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산 채로 죽었다.

지난 9월 중순쯤부터 나는 ‘자본’을 끝장내고 말겠다며, 혁명을 실행하고 말겠다며 메니페스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평생 시달려 온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던 문제들이 사적 드라마 속에서 퍼즐 맞추듯 제 자리를 찾아가더니 그림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행동, 판단, ‘신념’을 방해하는 자기혐오의 의심을 뚫고 그 그림이 내게 말했다. ‘씨발 그만 좀 의심 쳐 하고 다녀. 내가 여기 정답 던져준다. 자본이 씹새끼다. 믿거나 말거나 그게 사실이다.’ 나는 그 퍼즐들을 언어로 번역하기로 했다. 그림은 이미 모두가 봤다. 그 그림이 사실이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 꼭꼭 감춰둔 마음속 진심을 타인의 목소리로 보여주는 것, 현실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증명과 증언, 그리고 설득만 하면 된다. 그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뿐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진실’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그림은 말그대로 ‘그림’이라서 이게 이미지인지, 환영인지, 귀신인지, 아니면 진짜 현실인지 모두가 존나 헷깔려한다.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저 현실에 적응해서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따금 쿡쿡 쑤셔오던 현실이 나를 내리치는 해머가 되고, 언제부턴가는 옴싹달싹 못하게 짓눌러 침대든 아스팔트 바닥이든 그저 납작하게 누워있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시간이 너무 길었고, 너무 자주 찾아왔다.

자본이 죽일놈의 새끼라는 이 그림은 빈부격차, 경제침체, 금융위기, 기후위기, 전쟁, 식민주의,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 등 각자의 삶에서 각자 다른 형태의 현실로 경험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더 이상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내게 소중한 것을 소중하지 않다고 내 자신을 기만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의 모든 진실은 나를 매번 빗겨 나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부활한 예수의 상처에 기어이 손가락을 쑤셔넣는 토마처럼 진실을 바라보려 할수록, 진실을 찾아다닐수록 나는 너덜해졌다. 그딴 건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 멈춰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 남을 뿐이다. 믿으면 그게 사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한 친구의 말대로 안 보이는 것들은 안 보이는 이유가 있다. 없어서 안 보이거나 끔찍해서 보지 말라고 감춘 거다. 나는 그걸 말 그대로 ‘무서운 게 딱 좋아!’ 하면서 기어코 쫓아다녔다. 이제 와서 진실이라고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의 감각과 그 흔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조건적인 믿음. 사랑 뿐이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 한때 내가 진실이라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의 존재뿐이었다. 이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그 단서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그동안 망각했던 ‘잃어버린’ 기억, 트라우마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의 역학관계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당장 현실에서 다 같이 실행할 수 있는 행동전략이 나타난다. 무슨 트라우마? 어느 트라우마? 적은 누구? 무엇이랑 어떻게 싸우는가? 그런 질문은 지금 의미가 없다.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전쟁에 죽고, 다쳐서 죽고, 아파서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일하다가 죽고, 자살하고, 그 누구도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즉시 모든 것을 멈추고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며 솔직하게 말하고, 듣고, 각자의 이해를 교차 검증하는 일이다. 우린 ‘과학’, ‘진보’, ‘합리’의 망각 속에 신체와 정신이 망가진 지 오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이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증명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점진적으로 대를 이어 가속되어 인식조차 어려운 규모가 되어 버린 위기와 불안에 적응한 지 오래. 안전과 평화는 프로파간다가 휘두르는 모욕이 되었다. 우리가 ‘지닌’ 평화와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망상 속에 이미 모두가 판단 능력을 상실했다.

나는 오래 전에 좆됐고, 여전히 좆됐으며, 점점 더 좆돼 가고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 보려고 한다. 자기연민으로 읽힐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피해가며 덤덤하고 객관적인 이야기의 서술을 통해 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심지어 학술적으로 보이는 글을 쓰려고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교육받은 정상인’처럼 말해야 눈길 한 번이라도 주고, 내 말을 조금이라도 들어줄 테니. 그런데 이제 그딴 것도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만큼 급한 거다. 이게 나이브하고, 게으르고, 멍청하고, 징징대고, 자신의 과오를 남 탓으로 돌리는 소리로 들린다면. 그래. 니 좆대로 생각해라.

20대 내내 월세, 생활비, 학비를 벌어 가며 근근히 생활했다. 남들은 어떻게든 잘해 내는 것 같은데 어쩐지 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해낼’ 수 없었고,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매일 허덕이다가 금세 지쳐서 며칠이고 앓아누운 생활이 평생 반복됐다. 매일 14시간은 자야 했고 그나마 깨어 있는 시간 동안에도 기절할 듯이 졸렸다. 브레인포그로 생각의 연결이 불가능해 글 한 문장 쓰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A4용지 한 장짜리 레포트 과제를 작성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리고, 그마저도 완성할 수 없어 제출일을 미루거나 포기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마저도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공부든 일이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등의 ‘당연한’ 일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매번 똑같이 새로워 시작도 전에 낡아버린 다짐들과 재활하는 기분으로 살아갔다. 왜 매일매일이 재활하는 것 같은지. 왜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쌓아도 쌓아도 부서져 매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지 영문도 모른 채.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실제로 매일 재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렇다. 그 사이 많은 것을 잃었다.

돈을 아무리 긁어 모아도 당장 수중에 2만원도 없어 내일 밥값, 교통비 걱정에 시달리는 생활이 몇 년이고 지속되자 이 불안 속에서는 창작(그래요. 나는 예술충이다), 일, 학업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활비도 부족한데 재료비가 있을 리가 없다. 실패 비용이 없는 디지털 영상만이 내가 쥘 수 있는 재료였다. 노트북은 있고, 카메라는 학교에서 빌리면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다. 영화가 좋았고, 이미지의 연속적 배치로 관객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것’이 좋았다. 한편, 이러다 졸업작품을 도저히 완성할수 없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이 파산을 겪으며 수입은 커녕 빚만 미친듯이 불어나고있는 상황을 알면서도 월세와 최소한의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발 딱 3개월만, 80만원씩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학부생활 내내 작업 단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는데 그렇게 졸업작품 하나만큼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완성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알바를 하고, 전시 기회를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한편 경제적 기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모두가 알고 있듯 미대 졸업장은 취업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래도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난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학부 때 코딩 수업이 재밌었고 박근혜, 문재인 정권 동안 ‘디지털 뉴딜 정책’이라는 것을 정부에서 추진하며 코딩과 관련된 일자리 교육 지원이 쏟아졌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기로 했다. 더 이상 돈 때문에 불안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이고 나발이고 돈이나 벌자. 이러다 진짜 죽겠다. 가난한 주제에 재능도 없으면서 일은 안 하고 이상만 쫓으며 징징거리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도 지겨웠다. 나도 나를 계속해서 의심했다. 내가 정말 ‘그런 인간’이면 어떡하지? ‘정상 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막차를 놓치는 게 아닐까? ‘해보지도 않고서 신세한탄이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증명하고 싶었다. 나도 하면 된다. 일단 해 보자. 아니면 나중에 가서 결정해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치스러운’ 예술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복잡한 서류들을 취업센터와 학원을 오가며 작성하고 몇 주간 승인을 기다린 끝에 주 5일 6개월간 매일 8시간 수업을 들었다. 정부에서 수업료를 전액 지원했고 교육비 명목으로 50만 원가량의 현금도 매달 지원했는데, 그 돈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일을 하면 수입이 있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주말마다 몰래 클럽에서 현금을 받고 밤새 일을 하며 6개월을 보냈다. 기초생활수급도 국가가 인정하는 명확한 장애가 없는 ‘건강한’ 20대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교육비와 같은 이유로 받아도 문제였다. 두 가지 지원을 동시에 받을 수도 없다. 하여튼, 한국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 요구하는 ‘기본적인’ 것들이 참 많은데 그 ‘기본적인’ 것을 지켜가며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50만 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의 고시텔 쪽방 하나 월세가 당장 50만 원이다.

한국의 도시생활은 모든 것이 돈을 경유해야만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이 없으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매 순간 죽고 싶은 건지 죽임을 당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국민건강보험이 아무리 좋아도 내게 주어진 돈으로 기본적인 생활 유지 자체가 어려우니 아플 때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난 국민이 아닌가 보다. 적당히 웃어넘겼다. 돈이 없으니 싼 집을 어떻게든 찾아서 들어갔는데, 싼 집들은 다 이유가 있었다. 집에 뭐가 고장나면 고칠 수가 없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면 ‘내가 그걸 왜 해줘야 하냐’고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 가난해서 미치는 건지, 미쳐서 가난해지는 건지. 가난한 환경에 있으면 미친 사람들과 부대끼며 비상식과 광기, 폭력 속에 살아가게 된다. 물론 나도 미쳤다. ADHD 약을 먹어야 사람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니 그것만은 어떻게든 지속하려 했다. 노동으로 돈을 벌어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습도에 숨이 막히는 여름이 오면 최고 온도가 40도를 찍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에어컨을 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몸은 기운 없이 흐느적거렸다. 머리는 어지러워 의식을 잃을 듯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에어컨 없는 여름을 3번 버텼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자잘하게 받은 대출들이 더 큰 위기가 되었다. 취업을 하고, 회사를 관두고서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고 벌어서 갚으면 된다. 근데 내 상태가 더 이상 그게 불가능해졌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했다. 약을 먹고 머리에 힘을 존나 줘서 아픈 정신만 어떻게 ‘이겨내면’,  조금만 더 고생해서, 조금만 더 노력해서 당장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면 괜찮을 줄 알았다. 다들 대출을 받아가면서 그렇게 산다. 이건 ‘일시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 미래를 위한 자금이다. 그런데 이제 몸까지 아프고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게 명확했다. 항상 신체로부터 분노, 우울, 슬픔과 같이 뱃속이 꼬이고 심장이 죄어오는, 핏기가 가시거나 머리에 피가 쏠리거나 하는 생체신호가 보내는 끔찍한 감정상황들을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고, 그 인식이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만드는 지표가 되었다. 벗어나고 싶은 끔찍한 기분, 고통이 내가 통제할수 없는 형태로 반복되자 내가 어떤 고통에 지속적으로 시달릴 때에는 결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대상의 마음을 이해해야만 편안해질 수 있었다. 상처를 헤집고 고통을 끝까지 마주해야, 끌어안아야 비로소 편안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감각이 내 곁을 떠났다. 신호가 고장난 것이다. 점진적으로 진행된 증상과 그 시기를 나누는 무수한 지점들 속에서 나는 트라우마를 발견한다.

언제부턴가 통제되지 않은 감정의 표출이(분노/행복/슬픔 이런 거 상관 없이, 부정정인 것이었건 긍정적인 것이었건) 내게 폭력이 되거나 우습게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앞으로는 모든 것을 무조건 생각, 이성으로 판단하기로 결심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먼저 생각을 통해 상황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들여다보면 감정이 잦아들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말과 행동, 방향이 나타났다. 폭력적이지도 우습지도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집착. 조금씩 성숙해지면서 내가 느끼는 다양한 ‘우스움’은 오만이었다는 것을 다행히 깨닫고 부끄러운 순간도 많았던 한편 모든 오만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양철인간, 로봇, 뱀파이어가 되기로, 머릿속으로 삶의 결론을 내리듯 결심한 순간. 나는 그 사건을 인천에서 고통받던 청소년에게 자연발생한 인식론의 승리였다고 종종 친구들에게 설명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속된 우울증과 함께 켜켜히 누적되어만 갔던 PTSD가 신체에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싸움-도피반응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분리감, 해리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단순히 이해해서, 이제야 조금 편안해진 줄 알았는데, ‘정상’에 가까워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매번 트라우마를 하나씩 더 쌓아가고 있었다.

이제야 나는 감히 자신을 예술가로 호명한다. 게으름인지 현실의 벽인지 재능의 부재인지 계속해서 유예되기만 하는 창작 활동과 그나마 완성한 영상 ‘작품’들은 나조차도 그 내용과 의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그동안 무슨 말을 꺼냈던 것인지, 왜 그렇게까지 집착적으로 ‘무언가 만들어야만 한다’는 기분에 시달렸는지 안다.

예술가로 성장하는, 예술가로 키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이 무엇이고 뭐가 ‘진짜’ 예술인지 아닌지 그 기준은 뭔지 그런 건 상관없다. 이건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예술가’라는 직업과 정체성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만 존재할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야만 자신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과 일자리가 존재한다. 예술이 밥을 먹여 주진 않는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당장 굶어 죽겠는 마당에도 예술가로 살아가려고 하거나 다른 직업을 택해 살아가면서도 가슴 한켠에 예술가의 꿈을 안고 살아갈까? 그것은 우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예술을 하든지 간에, 내가 느끼기엔 결국 우울 속의 고통이 이상을 꿈꾸게끔 만드는 역학을 발생시킨다. 세상이 이미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굶어 가면서까지 예술을 직업으로 삼을 이유란 없다. 히토슈타이얼, 카디비, 고흐, 브베, 이자벨 아자니, 스윙스, 데이빗 린치, 월미도 공원에서 캐리커쳐 장사를 하는 사람, ‘운좋게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걱정없이 예술이나 하는’ 사람. 개인이 느낀 부정적 감정, 우울의 감각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합당’했는지와는 관계없이 감각만큼은 진실되게 현존한다. 그리고 그 누가 그 무슨 이유로 예술을 하고 그것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간에, 내가 보기에 결국 우울하고 우울할수밖에 없었던, 실존적 위기를 겪은 사람들만이 예술을 꿈꾸고 예술가가 된다.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으며 예술을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갈 ‘이유’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삶의 목적을 찾아다니는 것은 죽음을 쫓는 것과 같은 일인데, 귀신 들린 듯 집착적으로 목적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예술가, 창작자가 되고 싶어 한다. 모두가 DJ고, 작가고, 페인터고, 음악하고, 타투이스트고, 유튜버고, 인플루언서고… 예술을 하는 것과 예술을 직업으로 택하는 것, 예술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각각 다른 일이다. 이 말이 어떤 관점과 태도에 위치해 있는지와 관련된 의심은 살짝 걷어 놓고, 일단 같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한 번 봐 보자. 지금 현상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 예술을 업으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게 사실이다.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5년 가을 만 30살 생일을 4개월 앞둔 시점, 나는 오랜 세월 나 자신이 복합 PTSD로 인한 극심한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내 정신과 신체가 대부분의 세월동안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울증은 내게 있어 최초의 기억부터 함께해 온 지긋지긋한 환상 친구이자 오랜 인생의 숙제다. 죽음 충동, 자기파괴의 충동은 삶의 매 순간 내 모든 표면, 그러니까 피부와 구멍 속에 딱 달라붙어 아무리 씻어내도 씻어낼 수 없이 찐득하게 눌러붙어 숨을 가로막아 왔다. 그 충동과 우울이 불러오는 신체적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 모든 감각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가족도, 친구도, 의사도, 그러니까 나를 매일 마주하는 가까운 이들도, 전문가도 내게 발생하고 있는 이 문제를 당장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자신만이 찾을 수 있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착되는 것은 외부로 삐져 나오는 증상의 파편들뿐이다.

남의 집 자식에게 관심을 갖는 어른은 결국 어른이 되지 못했거나, 그들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보거나, 그들을 욕망하거나. 자신보다 한참 어린, 그러니까 ‘어른’으로부터 이질적인 존재,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어른. 그것은 돌봄과 치유의 형태가 되기도 하고, 폭력과 착취, 학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과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의 근간을 구성하는 시기. 아동·청소년기에 방치되고 불가항력에 의해 친족으로부터 분리 혹은 단절을 경험하거나 오히려 이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과 닮은 것을 찾고, 인식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바라는 사회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바람직한’ 과정을 겪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한편에는 닮은 것을 찾을 수 없어서. 혹은 나와 닮은 것이 끔찍해서. 닮고 싶지 않아서 ‘아닌 것’으로 자신을 덕지덕지 구성하는 과정을 겪는, 얼기설기 구성된 자아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파편들을 끊임없이 외부에서 찾아다닌다. 키메라 같은 자신의 모양을, 안락함을 가져다줄 구멍을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발견하는 족족 구멍 안으로, 기어코 제 발로 기어 들어가고야 만다. 구멍 난 어른과 구멍을 찾아다니는 어린 존재들 간의 상호학대와 파괴 속에 트라우마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생산하고, 그 여정의 끝에는 완연한 괴물의 탄생이 기다리고 있다.

한 친구는 그 자아를 자조적인 태도로 바빌론의 탑에 비유하곤 한다. 여차저차 살다가 뒤를 돌아보니 인간이라면 응당 해야하는 것,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것, 원래 그렇고 그런 당연한 것, 사회적 합의와 약속 등 그 어떤 것도 하나도 못(안)지키고 대충 눈치로 따라하는 척 시늉만 할 줄 아는 ‘사람’. 문이 있을 자리에 문이 있고 벽이 있을 자리에 벽이 있는데, 조금만 주의해서 바라보면 형태만 갖춘 모양새다. 문은 문이고 벽은 벽인데 문으로도 벽으로도 그 어느것으로도 기능하지 않는, 그냥 그런 모습으로 거기에 있는, 시늉만 겨우 해내는, 다급하게 일단 쌓아 올리듯 부실공사로 이루어진 '인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좋은 일, 슬픈 일, 기쁜 일, 힘든 일 등 다양한 사건과 경험을 겪는다. 사람은 누구나 복잡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보던 주관적인 태도로 바라보던(객관과 주관마저도 허상에 불구함에도…) 결국 사람은 지나온 삶의 시간속에서 상황과 감정에 대한 총체적 인지를 뜻하는 ‘인생사’를 누구나 갖고 있다. 과거의 축적이자 매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유기적 현존을 사회속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정의내린, 누가 뭐래도 나 만큼은 정의해야만 하는 자아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식을 구체화하고 생각과 인식을 연결하는 작업, 즉 복기 혹은 회상을 통해서, 혹은 꿈과 같은 무의식 속에서,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능동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해간다. 그런데 트라우마로 기억을 잃어버린 이들, 과거라는 시간 속에 구멍이 숭숭 나버린 이들은 존재 구성 자체에 장애를 겪는다. 기억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이다. 지난날의 모든 경험이 현재의 나, 나라는 현존을 구성하는 것인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자신이 자신을 모르고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자신이 모르고 이해할 수 없는 자신 내면에 ‘숨어 있는’ 환영, 유령들과 혼란 속에 자기 통제를 잃고 살아간다.

한편 당연하게도 ‘사회적인 인간’을 만드는 ‘긍정적 경험’과 ‘반사회적인 인간’을 만드는 ‘부정적 경험’이 각각 명확하게 구분, 정의할수 있는 형태로 한 개인의 삶에서 전개되진 않는다. ‘좋은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고통도 슬픔도 없이 모든 것이 ‘좋은 것’인 곳은 천국과 같은 유토피아뿐이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없는(ou-)'과 '장소(topos)'를 합쳐 만든 말로, 말 그대로 없는 장소, 비현실적인 장소를 뜻한다. ‘좋은 것’만 존재하는 세상, ‘좋은 세상’이라는 말의 공허함. ‘유토피아’라는 단어 속에 그 아이러니가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러나 그 장소, 우리가 상상하는 그 미래가 비현실적이며 당도할 수 없는 ‘없는 공간’이더라도.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말하는, 우리가 바라는 머나먼 비현실을 현실로 끌어당기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건, 경험, 이벤트, 상호작용 그 자체는 어떤 가치도 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인식하기에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이라는 것이 있고, 그중 어떤 것이 어떤 형태와 빈도로 개인의 삶 속에서 발생했는지에 달려 있다. 양날의 검, 동전의 양면, 종이 한장차이라는 말이 있듯 모든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고 한 개인 안에서 ‘긍정적인’ 경험 혹은 영향으로 발생할수도, ‘부정적’으로 발생할수도, 혹은 이런 양자택일의 가치판단이 이루어지 않거나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유로 그냥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사건과 경험을 단순히 인지하고 흘려보내는 사건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사건, 경험이 긍정적인 것이었는지 부정적인 것이었는지 자기 자신조차도 구분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기억과 경험도 흔하다. 애초에 경험이라는 게 그렇다.

퍼즐을 번역하는 일. 이것은 경험을 말하는 일이다. 시간을 말하는 일이다. 오즈의 나라, 원더랜드를 헤매다 사자, 로봇, 허수아비, 마녀, 토끼, 트럼프 병사들, 뱀파이어, 에일리언, 프랑켄슈타인, 귀신, 무당, 사이보그랑 지지고 볶고 싸우고 죽이고 친구먹고 밥먹고 자고 맞고 때리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무너지고 모든 것에 항복하고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 파국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 둘리가 엄마를 찾아 얼음별 대모험을 떠나는,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여정 끝에 되찾은 잃어버린 기억을 말하는 일이다. 현상을 말하는 일이다. 역사를 말하는 일이다. 자연을 말하는 일이다. 감각을 말하는 일이다. 찌그러지는 일이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매트릭스의 환영이 찌그러져 이제 그 모든 것이 데이터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알리는, 공포 영화의 점프스케어처럼 방심한 사이 관객을 화들짝 놀래키는 두려운 미지의 신호. 우리가 더 이상 인식하지도, 감각하지도, 바라보지도 않는 경고를 말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일이 이렇게나 자기파괴적인 일인지. 나는 내게 많은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알고 있었고, 그것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삶의 큰 숙제였다.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일은 매번 내 안의 부끄러움과 슬픔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내가 나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남들에 비해 유난히 더 괴로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심한 건지, 내성적인 건지, 내향적인 건지, 찐따인 건지, 이런 걸 부르는 이름은 많고 많아도 막상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자신감을 갖고, 좀 흘려 보낼 줄도 알아야 하고, 바쁘게 살다 보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이겨내고 더 강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그런데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다. 나도 좀 흘려보내고, 용서하고, 앞으로 더 ‘잘’하고, 자신감, 자존감을 키우고 그러고 싶은데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나도, 바깥도 공격한다. 내가 ‘남보다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할 순 없었다. 일단 현상을 인정하고 취한 전략: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든 추악한 지점들을 신속히 밝혀내기. 미래의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제거하기. 미래의 내가 부끄러운 일은 남이 봐도 부끄러운 것일 테니 남에게도 나에게도, 나도 모르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남에게 들키기 전에 내가 빨리 알아내야 했다. 언제나 슬픔이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슬픔을 프로세스해야 하는데, 그 슬픔의 과정이 자기연민으로 돌아와 기어코 또다시 내가 나를 때려눕힌다. 내가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슬픔이 삐져나온 내 모습을 들키는 게 두려웠다. ‘정신 나간’ 행동을 하니까. 나도, 남들도, 그러니까 끔찍하게 사랑하는 이들마저 나 때문에 상처받는다. ‘추악한’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게 함정이다. 그러니까 뭔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게 있다고 믿고 그게 뭔지 찾아다닌 거다. 또 파국 서사다.

‘그 어느 부분에서도 추악하지 않은 더 나은 인간’이라니. 그 생각이 자기 자신에게 향했더라도 ‘니가 히틀러냐?’ 생각하면서, ‘자, 이제 그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감정을 멈출 수 없었다. 통제되지 않은 강렬한 내면의 감정은 자연재해처럼 현상적으로 끊임없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당연히 자꾸 남에게도 그러게 된다. 미워하면 미워하는 나도 미워지는 걸 알아도, 만인은 평등하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내가 뭘 모르고 잘못했나? 이 사람이 잘못한 건가?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그것만큼은 지켜야 한다. 폭력 저지르지 말자. 내가 무너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그걸 알았으면 애초에 내가 이런 인간이 아니었겠지 한심한 생각 그만하자 뇌에 힘주자 정신차리자 당황하지말자 상황을 좀 이해하고 판단해보자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그렇게 편집증적으로 내 트라우마를 알아내려고 하면서도 트라우마가 정확히 무엇인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사람에게 작동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정신적 외상이나 충격적인 사건, 하여튼 외상을 입으면 정신에 큰 피해를 입고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을 겪으며 PTSD에 시달리게 된다는 말은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듯했다. 피해는 무엇이고 스트레스 반응은 무엇이며, 그로 인한 장애는 또 무엇인지…

세상엔 트라우마의 종류가 참 많다. 역사로 기록될만큼 거대한 규모의 숫자로 사람들에게 외상을 입힌 트라우마들이 있는가 하면,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트라우마, 봄바람에 날아온 송충이가 얼굴에 달라붙어 깜짝 놀란 어린이에게 생긴 트라우마도 어쨌든 트라우마는 트라우마다. 그 종류가 너무 방대해서, 개별적이고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서 뭐가 트라우마였는지 개인이 혼자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트라우마인가? 아닌가? 내가 오버하는 건가? 이건 트라우마고, 저건 엄살이고, 저건 자기연민이고, 저건 트라우마 맞는데 그렇다고 트라우마 반응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게 트라우마 반응이다. 트라우마가 트라우마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게 트라우마다. 그게 트라우마가 하는 일이고, 기억을 ‘잃는’ 일이다. ‘정신에 큰 피해를 입다’는 말의 ‘피해’가 이걸 뜻하는 거다. 순간의 기억이, 경험이, 사건이 좋았는지 싫었는지 슬펐는지 화났는지 그게 나한테 무슨 감정이었는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무슨 상황이었는지 뭐였는지 당최 모르겠는 거다. 왜 모를까? 내가 뭘 모르고 있는 거지? 왜 이해가 안되는거지? 뭘 더 공부하고 알아야 이걸 이해할 수 있는 거지? 뭘 알아야 하는 거지? 이미 알 건 다 아는 것 같은데, 그저 내 오만인가? 멍청해서 그런가? 지능이 낮아서? 우울증 때문에? ADHD 때문에? 합리적 인간이 되기 위한 합리적 결심. ‘감정 속의 숨겨진 진실을 이해(머리 속에 갇혀 같은 자리를 멤도는 집착적인 생각들, 신체를 배반하는 트라우마의 함정)하겠어!’라고 16살 쯤 영화에서 으레 판사가 망치를 땅땅 내리치는 것처럼 결심했을때만 해도 그게 나를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보호하고 인도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능력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우울증이 오래 지속되면 뇌 기능이 떨어져서 지능도 낮아지고 기억력도 나빠진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진짜 그런가 보다, 올게 왔다고 생각했다. 인지능력이 떨어진거다. 몸이 보내는 감각 신호가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의식적으로 차단하고 무시하다가 언제부턴가 신호를 읽는 법을 진짜로 잊어버리게 된 거다.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거다. 세상을 감각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갇혀 버려 말 그대로 '통 속의 뇌’가 되어 버린 거다.

공포 영화, SF 영화, 판타지 영화는 이 망각의 헤프닝, 감각과 공감의 문제를 비인간 존재, 환상의 존재, 현실에 없는 존재, 귀신, 환영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돌림노래처럼 반복하는 장르다. 없는데 있는 것. 트라우마, 외상적 사건, 고통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 모든게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없는걸 있다고 생각하는 것, 믿는 것이 현실이 된다. 관측되면 인지를 통해 학습하고 그 학습이 도출한 ‘인지적 결과’로서의 이해, 판단, 정의가 사실을 만든다. 사람은 사실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분열된 사실이다. 현실은 분열된 사실과 분열된 무수한 행동 속에서 만들어진다. ‘PTSD에 시달린다’는 말의 함정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없는 것에 시달리는 것이다. 무언가로부터 시달리는것은 사실인데 ‘무언가’가 뭔지 알 수 없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고통의 감각을 두려워하는 것,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다. 알아도 시달린다. 그 사실을 부정할수는 없는 거다. 없는데 있으니까. 매일 매 순간 나타나니까. 모든 것을 파멸시키니까. 그게 나고, 내 기억이고, 친구고 가족이고 적이고 동료고 ‘현실’이니까. ‘있는 것’은 결국 불안과 신체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감각 뿐이다. 그것만이 현존한다. 그런데 보여줄 수가 없다. 증명할 수가 없다.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학’으로 관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해’와 ‘논리’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해와 논리, 그 학습이 모든 것을 가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지우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없는 것, 있었던 적도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기억을 꺼내는 일이다. 아무리 읽고 보고 듣고 말해도 진실은 내게 닿을 수 없었다.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트라우마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쓴 개인의 경험이 거세된 이론의 언어로서 작성되어야만 학술적인 글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고, 그 나머지는 ‘수필’이나 ‘에세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설명될 수 없다. 트라우마는 공포, 불안, 의심을 발생시키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게 만든다. 그렇게 사람들은 고립된다. 누군가가 나를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에 시달린다. 트라우마의 증상과 현상,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곤란한 점이 이 부분에 있다. 모든 게 지적 혹은 공격이 된다는 점이다. 자본의 논리 속에서 모든 것이 폭력, 학대, 착취가 되고 우리 모두가 그 안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매일매일 순간순간 경험하며 살아가다 보니 그 모든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거 당연한 거 아니고, 정상 아니다.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만 학대당하는 기분에 시달린다. 심지어 트라우마가 많아서 그렇게 시달리며 죽네 사네 하는 사람들도 뭐가 폭력이고 학대이고 착취인지 모른다. 그 바깥을 경험해 본 적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보고 경험해도 모른다. 나도 그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알 수가 없는 거다. 사랑조차 내가 휘두르는 폭력이 된다. 그게 자본이 휘두르는 권력, 통제의 논리다. 모든 것을 착취의 논리로 잠식시켜 개인의 삶, 관계, 신체, 감각, 정신까지 통제하고 쥐어 흔든다. ‘생존본능’으로 신체가 고통을 감각하는 기능을 전선 끊어내듯 차단시키고 나한테 그런 게 있었다는 기억조차 망각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판단하기를,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기만, 지적, 공격 혹은 비난이 되지 않는 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신의 이야기라고 발화하는 것, 자기 자신으로서 발화하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혹은 보여지는 것이 두렵고 끔찍하기 때문에 세상과 분리하고 내면에 고립시켰던 이야기를 꺼내 세상과 연결시키는 이야기다. 자신의 배를 갈라 장기를 흩뿌리고 세상을 피떡으로 만드는 일이다. 비체 미학이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지는 사방에 있다. 아니, 세상 모두가 동지다. 기억이, 과거의 경험이,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현실이 너무 끔찍한 나머지 동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일 뿐이다. 서로 닿기만 하면 된다. 정말 그뿐이다.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이 모든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글은 동지들을 연결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죽은 이들을 되살리는 일이다. 죽었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이러다 곧 다시 죽을 것 같아서,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쓰는 글이다. 이러다 다 죽겠다고,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고 비는 글이다. 혁명을 위한 메니페스토는 언제나 그런 것이다.

Origin of language

기록은 환영을 만드는 일

기록의 도구들 가방속의 물질들

안과 밖의 갈라짐의 피

비명을 애도하는 메아리

버석 마른 핏자국을

빛을 애도하는

애도

Letter HAN on tree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빛, 소리, 냄새, 바람 등 갖은 질료들로 이루어진 물리적 실체로서 우리의 신체와 그 바깥을 구성한다. 배고픔, 피곤함처럼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인지하듯 우리는 실재적 현실 속의 실재적 구성으로, 신체로 ‘바깥’을 인지하고 감각한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인지함으로써 생각과 이해가 발생한다. 생명은 움직이는 것이다. 생명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단 한 번도 단일한 존재로 고정된 적이 없다. 모든 존재가 그렇다. 정지한 것, 단일한 것, 분열하지 않는 것, 움직임이 없는 것, 변화하지 않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인간은 생명이 지속되는 동안 필연적으로 물리적 현실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그 경험 속에서 학습과 발달을 이룬다. 경험 속에서 발생한 학습의 기록은 지식과 문화를 생산·발전시켰다. 기록의 축적은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실재를 점점 더 쉽고 빠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불편과 위험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모든 것에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장소에는 주인이 있고, 의도에 따라 공간이 개방되어 있거나 닫혀 있다. 닫혀 있는 곳은 허락 혹은 자격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상품뿐인 사물들은 태생부터 저주받았다. 모든 것은 주인이 있고, 그 모든 것이 모여 도시가 된다. 개인은 그 사이를 유령처럼 부유한다.

노동은 삶이다. 학업, 교육도 삶이다. 관계도 삶이다. 즐거움도, 충동도, 즐거움도, 행복도, 슬픔도, 충동도 지루함도, 식사도, 산책도, 출근길도, 여가도, 우울한건지 졸린 건지 아픈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것’인지 뭔지는 몰라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을 포기하고 쉬는 건지,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도망치고 있는건지 죽으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미 죽은 것인지 뭐가 됐든 그것도 삶이다. 모든 것이 삶이다. 삶은 지금 여기 이 순간 존재하는 것 그 자체다. 존재하기, 물리적 현존으로서 이 땅을 딛고 있는 그 모든 순간, 공간, 지리, 자연, 도시, 환경, 국가, 대지, 집, 건물… 내가 딛고 있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삶이란 질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은 주체 간의 교환도, 하나의 주체가 신체로 규정되는 내부·바깥으로 의지를 행하는 것도 아니다.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부수고 부서지는, 다듬고 다듬어지는, 보살피고 보살펴지는, 양자가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을 ‘성장’으로 부르건 ‘파괴’로 부르건 ‘치료’로 부르건 ‘돌봄’으로 부르건 ‘폭력’으로 부르건 ‘사랑’으로 부르건 모든 존재는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는다. 존재하는 것, 행위는 곧 삶이며 삶은 침범하고 감염되는 일이다.

우리가 생명이 없다고 정의하는 사물들도 그렇다. 우리가 인식하건 인식하지 않건 모든 존재는 항상 영향을 행사한다. 거대한 바위가 길 위에 놓여 있으면 빙 둘러 지나가고, 오리가 물속에 들어가 헤엄을 치면 물의 표면에 파동이 일고 오리는 젖는다. 물리적 존재만 영향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관념, 가치, 의미, 규칙, 이론 등 인식으로 형성된 ‘실체 없는 실체’ 또한 영향을 행사한다. 나는 이것을 유령, 귀신이라 부른다.

모든 것은 그저 존재함으로써 영향을 미친다. 존재한다는 게 그렇고 그것만이 확언할 수 있는 세상의 본질이다. 존재함으로써 영향을 미치고, 영향으로 인해 작용이 발생하며, 그 모든 영향과 작용의 연쇄와 확산이 이 세상을 이룬다. 태양 에너지로 증발한 물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었다가 육지와 바다로 방울방울 떨어지고 뒤섞여 순환하는데 그 어떤 본질적 의미와 목적이 존재하지 않듯 모든 것은 그저 존재하고 순환할 뿐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계 순환’이라 부르고 생물과 비생물을 구분 짓는다.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깨지고 있는 인류의 ‘지성’이 만들어낸 얼토당토 않은 망상적 구분: ‘문명/자연’, ‘인간/동물’만 봐도 그 오만함에 ‘지금 장난하냐?’가 절로 나온다. 인간이 있고 인간이 아닌 것들, 인간이 있고 인간이 만든 것들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희대의 사기극이자 또라이 망상, 이데올로기. 꿈 깨라. 모든 게 자연이고 모든 게 자연계로서 순환 중이다. 중요한건 기존의 정의와 구분, 이름과 같은 기표와 표상적 기의가 아니라 질료와 형상의 총체로서의 실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관찰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나누는 것이다. 본질적인 의미 따위는 없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그게 의미가 되고 사실이 된다.

경험, 온전한 경험. 나는 행복한 이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행복한 이들이 나이브하다고 믿었던 시간도, 행복한 이들이 미웠던 시간도, 행복한 이들이 불쾌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행복, 행복이 지속되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게 행복은 찰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행복이 찾아오면 어쩔 줄을 몰랐다. 익숙하지 않은 강렬한 경험이었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강렬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행복은 가끔씩 찾아오는 대단한 일이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다닌다. 대부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행복은 신이 기적을 내리듯 가끔씩 찾아와 영광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런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행복은 은은하게 내면에 자리 잡아 삶을 지속시키는 힘이다. 나는 그것이 곧 생명이라고 믿는다. 행복은 생명의 감각이다. 진정으로 살아 있다면 행복은 언제나 조용히 함께하며 이따금 가슴이 벅차오르고 손가락 사이가 저려올 만큼 거대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건강한 상태는 행복이 내면에 은은하게 자리 잡은, 삶을 살아갈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그러니까 내겐 생명이 없었던 거다. 나뿐만 아니라 내 눈엔 모두가, 모든 것이 생명을 잃고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처럼’이 아니라 진정으로 모두가 죽어가고 있으며 이미 죽어 버렸다고 느낀다. 나는 이미 포스트아포칼립스 속에 살고 있다. 그동안 오래 동안 모두를 잃을까 두려워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게 깊이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가 친구들의 얼굴에서도 짙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에는 모두를 살리고 싶다는 집착에 빠졌다. 내 그림자가 그들에게도 옮겨 갔다. 그들을 써서 내 그림자에 물을 탔다.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어떻게 멈추지? 그들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세상을 향해 마음이 활짝 열린, 세상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존재하는, 살아 있는 이들은 세상 모든 게 있는 그대로 괜찮다. 그들은 불안하지 않다.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몸을 가만히 둔 채 모든 것을 흘려보낼 수 있다. 쉽게 화가 나지도, 쉽게 슬프지도 않다. 외부 자극에 쉽게 지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믿지 못하며 불안한 이들은 쉽게 화가 나고 쉽게 슬퍼하며 외부 자극에 신경이 항상 곤두서 있으므로 쉽게 지친다. 불안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에너지다. 불안이 터질 듯이 가득하면 사람은 시한폭탄이 된다. 해결되지 않은, 돌봐지지 못한 불안이 풍선처럼 주머니가 터지는 순간 사람은 거죽이 찢어지며 죽음의 사신으로 변신한다. 이성을 잃고 주위의 모든 것을 죽여 버린 뒤 정신이 돌아오면 슬픔에 잠긴다. 어떻게 그런 짓을? 그런데 그게 나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뚫리는 구멍들을 터지지 않도록 막아대고 부여잡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내가 나를 막아야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 주머니가 한 번만 더 터졌다가는 내가 나를 죽여 버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안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커지면 커질수록 정신은 더욱 산만해진다. 불안 때문에 더 불안해진다. 불안이 불안을 불러오는 모습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가속하다가 언제부턴가는 빛의 속도에 도달해 버리는, 그 치솟는 에너지가 핵융합 발전기를 넘어선다. 불안은 자본의 에너지다. 우리는 이미 매트리스 속에 살고 있다. 불안에 시달리며 휘둘리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사람은 생명을 잃고 끝내 살아 있는 법을 잊게 된다. 인간 배터리 완성이다.

불안한 사람은 불만이 많고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예술가들의 성격이 대체로 유별나고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안해야 예술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상 속에서 편안함을 쉽사리 느끼지 못하기에 불안하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과 공허함에 시달린다. 불안한 이들은 자신과 닮은 것, 자신을 발견할 단서, 자신을 비춰줄 거울을 쉴 새 없이 찾는다. 애착을 느낄 대상, 사랑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모든 것은 다르다. 세상에 나 같은 건 나밖에 없다. 결국 나를 밖으로 꺼내는 수밖에 없다. 모든 예술가는 나르키소스, 피그말리온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인간과 자연, 지구가 죽어가는 마당에 전 인류의 노동력과 자원을 갈아넣어가며, 아니,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죽이고 학살해가며 AI와 결합된 휴머노이드 로봇, 인간 아닌 인간을 창조하려 한다. 무엇을 위해? 어쩌다 우리의 미래가 그리스 신화와 같은 비극이 되었을까? 뻔하디 뻔한 예언, 신탁은 이미 내려졌다. 너무 많고 시끄러워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How did our future became a dream of Pygmalion

정말 황당한 일이다. 너무 황당해서 내 생각이 맞기는 한지 계속 의심됐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봐도 이제 모두가 읽지 않는 신탁, 끔찍한 불안에 시달리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며 하나둘씩 나가떨어져 산 채로 죽어 버리고 있다. 산 채로 죽은 자는 죽음만을 안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듣고, 볼 것을 찾으며 모든 것을 소비한다. 사람도 소비한다. 모든 것을 도륙해 허기를 채우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린다. 소비의 반대편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소비를 멈추게 하고, 소비를 소비가 아니게 만든다. 그러나 사랑을 감각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며 홀로 세상을 등져버린 자는 소비 행위에 내재된 폭력과 파괴만을 쫓는다. 폭력과 파괴의 카타르시스가 사랑이 된다. 사랑이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힘인데, 파괴만을 알아 사랑마저 파괴의 언어에 잠식되어 버린 이들이 있다. 사랑하는데 모든 행위가 파괴행위가 된다. 끔찍하게 사랑하는 모든 것이 부서진다. 그 어떤 것도 잃고 싶지 않아서,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자신이 지닌 에너지를 죽도록 쏟아 붓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결국 모든 것을 제 손으로 파괴한 꼴이다. 삶에 집착하는 이들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듯,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집착은 도리어 모든 것을 파괴한다.

Space spiny fish that eats Dooly and their friends

자본은 욕망을 먹고 자란다.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비롯된다. 결핍의 ‘원인’은 물질적일 수도, 금전적일 수도, 정서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핍의 대상과 원인이 무엇이건 결핍은 결국 감각이자 정서적 상태다. 자본은 욕망을 먹고 자라나므로 의도적으로 결핍을 만들어낸다. 결핍은 불안을 만들어내고 더 많은 욕망을 만들어낸다. 돌고 도는 무한동력 인간 배터리. 그곳에 악마가 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상상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가 느끼는 가치는 인간으로부터 발생한다. 인간이 있기에 가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인간이 느끼는 가치는 인간에게만 있다. 그것은 환영이며 우리는 환영 속에 이루어진 합의를 통해 살아간다. 정말로, 세상 그 무엇도 근본적으로 가치를 내재하고 있지 않다. 가치는 환영이며 결국 인간만이 생산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노예제가 계속되는 이유다.

이것은 혁명을 위한 글이다.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들이 나와 많은 존재들의 생명 보존권을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종 자신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꼬리를 문 뱀처럼 같은 자리를 빙빙 멤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밀려드는 잡생각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무엇이 기만이고 오만인지, 무엇이 내게 온전히 진실한 사실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혁명이라는 목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가지치기를 돕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필요한 가지마저 망각 속에 잘라 버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럼에도, 갖은 혼란에도 혁명을 원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트라우마와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혁명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도. 그렇다면 폭력은 무엇이며 트라우마는 무엇인지, 폭력과 트라우마가 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아 쉽사리 돌파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우선 사야크 발렌시아의 ≪고어 자본주의≫의 초반 구절들을 단초 삼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정치, 세계화가 결합하면서 국경을 없애고 거리를 —비록 가상 공간에서만이라도— 단축하자는 모토 아래 새로운 과학 기술이 대중화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이 결합의 목적은 무비판적이고 고도 소비주의적인 사회적 의식을 만들어 숨길 필요도 없는 통제와 감시의 시스템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시스템의 존재 자체가 수용할 만한 것이고 필연적이며, 사회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민족 국가의 개념은 해체되어 왔고, 시장 국가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이 전이 현상이 핵심적인 이유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어떻게 입증할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한 국가의 정치가 그 국가의 문화 감각을 반영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원리의 기저가 되는 것은 시장 국가 시스템이다. 시장 국가 체제는 개인적, 문화적, 사회적, 국가적 정체성의 매개 변수처럼, 상표(™), 로고(®), 이름(©), 서명, 아이콘과 유명한 이론 등의 사용과 소비를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의 수준을 현상유지(status quo)하게 해 줄 구매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권 국가의 붕괴와 제1세계의 국가 개념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제3세계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겠다. 제3세계의 국가 붕괴는 이중의 경로로 나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요구에 동화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제3세계 인구가 이 요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 결과 고도 소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일종의 대안 국가가 생성되었다.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 조직범죄가 나타나는 현상은 가장 안정적인 경제 부문이 회색 시장이나 암시장이라는 것과, 부패하고 와해된 국가가 시민들을 혼란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시민들은 범죄에 연루되는 것이 “완전히 이례적인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받아들인다. “국가는 완전히 붕괴하고, 한계에 다다른 경찰력은 법에 따라 치안을 유지할 수 없어진 상황에서 범죄 문화와 협력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마피아는 국가의 많은 기능을 이어받거나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국가와 뒤얽힌다. 이 과정에서 마약업자들이 후원하는 학교, 병원, 기반 시설 등의 확충으로 시민들의 필요가 충족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거부하기 어렵고 구분하기도 어려운 관계망이 만들어진다. 국가의 기능과 마약업자들의 경계는 흐려지고, 시민들은 침묵과 은폐로 이 과정에 기여한다.”

우리가 처한 사실이자 실시간으로 경험되는 모든 것, 삶을 전개하는 물리적 현실부터 우리의 가정, 관계, 그리고 신체와 지각까지 그 모든 것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 사야크 발렌시아(Sayak Valencia)는 영화 장르에서 파생된 단어 ‘고어(Gore)’가 촉발하는 이미지적 표상을 통해 ‘세계화’로 불리는 전 지구적 범죄 행위가 ‘제3세계’ 국가, 경제, 정치를 비롯한 삶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설명하며 이를 ‘고어 자본주의’로 명명한다. ‘세계화’의 중심에는 삶 속 깊숙이 침투하여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자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통제의 도구로서 폭력이 자리잡고 있다. 주권 국가의 붕괴, 국가와 시장의 결합, 상품 코드로서 분열된 ‘정체성’, 고도 소비주의적 사회로의 전환은 더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개판 5분 전이 아니라 이미 개판난지 오래다.

≪고어 자본주의≫가 탄생한 배경을 추론하자면(어쩌면 당연한 소리지만): 멕시코가 국가로서 경험하는 상황과 세계적 맥락 속에 위치해있는 입장, 그 중 정부와 마약 카르텔의 유착관계속에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물리적 폭력. 그러니까 폭행, 살인과 같은 그 누구도 폭력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을 처참한 폭력이 개개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폭력은 자본이 생산하는 필연적 결과이자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기능하도록 하는 도구다. 자본의 논리 속에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역할로서 폭력이 가장 쉬운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폭력은 돈이 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 충족이 보여주는 ‘합리성’은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인지의 어려움은 폭력에 무뎌지게 만들고, 침묵과 은폐 뒤엔 망각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해결할 수 없는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때에는 폭력과 고통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폭력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망각한 것을 기억해내는 일이다. 고통과 두려움을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하는 뇌와 신체의 불화 속에 우리는 더 이상 폭력이 무엇인지 모른다. 망각된 기억을 되살리고 직조하는 일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면 그냥 우파다... 우파는 나쁜거고 그래서 한국은 나쁜 사람이 많은 나라고 뭐 그런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다.', '한국에서가 그런게 아니라 사람의 본능은 기본적으로 우파쪽에 기울게 되어있죠. 근데 다같이 본능대로 살면 좆되잖아요 그래서 진보교육이 필요한거죠'

한국에서 좌파는 유니콘 같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민주당과 한나라당… 여당과 야당이라는 두개의 거대 정당이 맞붙는 구조 속에 누가 좌파네 빨갱이네 수구꼴통이네 백날천날 물어뜯고 싸워대지만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그 어디에도 좌파도, 빨갱이도 없다. 모두가 파시스트이기에 그 누구도 감히 서로를 파시스트라고 칭하지도 모욕하지도 않고, 대부분의 논리가 파시즘적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파시즘이 파시즘이 아니고, 파시즘이 더이상 파시즘으로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파시스트의 천국이 오늘날의 한국이다. 이게 조국을 향한 내 진심 어린 시선이다. 최근 X에서 ‘한국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면 그냥 우파다’라며 각 나라의 정당 스펙트럼을 시각화한 도표를 올린 게시물을 보며 깊게 공감(했다기 보다는 당연한 사실을 적시한 정보를 읽은 것에 가깝다)한 한편, 그 아래 달린 댓글을 보고 새삼스레 수심이 깊어졌다. “한국에서가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본능은 기본적으로 우파 쪽에 기울게 되어 있죠. 근데 다같이 본능대로 살면 좆되잖아요 그래서 진보교육이 필요한거죠” 진보 교육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사람의 본능이 기본적으로 우파쪽에 기울게 되어있다는 상상도 못한 주장이 시야에 무방비하게 불쑥 들어오자 맥이 탁 풀려버렸다. 사람의 본능: 먹고, 자고, 싸고, 쎾-스하고. 이 유저가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는 아마도 이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인간이 삶 속에서 먹고 자고 싸고 섹스하기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산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은 생명 보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이는 곧 생물의 ‘생존 본능’이므로 본능은 우파의 논리를 따른다.’ 아, 이데올로기여!

그럼에도 힘이 쭉 빠지게 하는 이 댓글에서 나는 어쩐지 철왕성과 같은 매트릭스의 틈새를 발견한다. 사람은 본디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능대로 살았는데 우파가 된다는 것은 본능이 우파를 지향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본능이 자본의 논리 속에 학대 및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삶이자 생존의 기본 요소, 살아 있음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 행위의 실행을 투쟁으로, 약탈로, 폭력으로, 상품이자 소비로 만드는 구조가 있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섹스하는 행위 그 자체에는 정치적 진영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부 시절 교수님이 BL 만화 속 커플에 대해 “누가 탑이고 누가 바텀이냐”고 물었을 때 번갈아 가며 포지션을 바꾼다고 하니 “그것 참 민주적이네”라고 하셨던 그런 실없는 농담을 말하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가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주체적으로 선택을 하고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행위가 상품으로, 소비행위로 변모하여 자본을 경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능’을 따라 소비할지, ‘이성’을 따라 소비할지. 우리는 자본이 구축한 시스템 속에 객관식 메뉴판 위를 미끄러지며 선택이란 환영에 눈과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볼 뿐이다. 소비행위는 근본적으로 폭력이다. 폭력이 우리 내부에 너무나 깊숙이 자리 잡아 버린 나머지 우리는 더 이상 폭력을 인지하지도, 감각하지도, 목격하지도 못한다. 모든 폭력은 전쟁용 드론의 시야처럼 동떨어진 물리적 거리와 시차 속에 이미지로 납작하게 압축된다. 이미지는 의도적이건 의도적이지 않건 많은 것을 지우고 누락시킨다. 매체 자체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능하며 그 기능, 특성 자체가 이미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폭력과 트라우마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는 언제나 사적 경험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일, 증언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요즘 엄마랑 도통 연락이 안 된다. 카톡도 전화도 받지 않는다.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바쁘니 나중에 전화하겠다는 마지막 메세지에 집앞 공원 잔디에 자주빛 꽃이 가득 솟아난 풍경과 템펠호프 공원의 하늘, 그리고 삼나무에 피어오른 붉은 돌기 사진을 보내며 ‘크리스마스 트리용 나무가 빨갛게 되는 줄 처음 알았다’고 답한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즐거운지 슬픈지 행복한지 밥은 먹고 잠은 자는지 산책은 하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제발 전화 좀 했으면 좋겠는데’라는 메시지 옆의 숫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매년 봄이 찾아올 때 쯤이면 들려오는 자살 소식들이, 창 밖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듯 저 멀리서 들려오던 죽음이 해가 갈 수록 거리를 좁혀 오는 듯한 불안에 전화를 걸 때마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전화를 걸어야 받든지 말든지 할 텐데, 받아도 안 받아도 두렵기에 전화는 계속 유예되고 그렇게 건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지난 4년간 매년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그녀의 곁을 떠났다. 방문요양사가 코로나 확진을 받아 외조부모님이 자가격리에 들어간 어느 날 아침, 외할아버지를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외할머니의 전화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외할아버지는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의사들은 코로나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에 맞는 치료를 진행했다. 그렇게 입원하신 지 약 3일째 되던 날 깨어나신 외할아버지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더 이상 걷지 못하셨다. 죽음은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 70이 다 되어가던 나이까지 춤을 즐기며 매일 아침 근력운동을 하고, 크루저 오토바이로 이곳 저곳을 쏘다니는, 노년에 취득한 전기수리기사 자격증으로 일을 하며 노년을 보내던, 빽빽하고 검은 머리를 자랑하시던 풍류를 즐기는 마초 남성상의 외할아버지는 어느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하루 아침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렸다. 한쪽 안면에 마비가 와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고,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그의 마지막 젊음이자 멋, 자부심이었던 오토바이와도 작별을 고해야 했다. 본래 항상 화를 내듯 말하는 말투를 지니셨던 그는 언제부턴가 정말로 항상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입을 열 때마다 어눌한 말투로 울분을 토하듯 말을 하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답답함에 매번 끝내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화난 울보가 되었다. 젊은 날 평생 외도와 두 집 살림을 이어가다가 언제부턴가 지난날들을 속죄하듯 아픈 외할머니의 수발을 들며 삼시세끼 요리를 책임지기 시작하셨으나 때는 이미 너무 늦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이유 모를 통증’으로 반평생을 누워 계셨고, 외할아버지는 외도와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가정에 불성실했던 아버지로 자식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몇 번의 사업 실패와 잦은 이사, 외도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로 항상 불안과 위기를 가정에서 느끼며 살아갔던 자식들은 더 이상 그의 말과 감정들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모두가 질려 버렸고, 모든 이야기는 늙어 버린 한심한 노인네의 투정일 뿐이다. 그러던 그가 며칠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깊은 잠에 들었다 깨어나더니 걸을 수도,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인천의 반지하 빌라에서 단둘이 정부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몸이 아픈 노부부에게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순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각자의 사정으로 다섯 남매 중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그들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안타깝게도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형제자매를 향해 ‘아무리 바쁘고 여유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그렇게 내버려 두는지’라는 원망 혹은 서운함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 바빠서,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라고 이모 삼촌들 모두가 말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아마도 그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자식 간의 도저히 풀리지 않고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각자의 사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언제나 한결같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는 했는데, 이 가르침은 한때 나의 자부심이자 오만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원망스러운 저주가 되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뒤돌아보니 이제는 너무나 감사한 절절한 사랑의 선물, 둘도 없는 유산이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 아빠, 남편들, 두번째 남편의 자식들, 그리고 본인의 자식인 나, 모두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꾸준히 실천해왔으나 그 실천이 그녀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정답이 되지는 못했다. 자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모든 이해가 빗길에 미끄러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답이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자의 삶에서 전개되는 투쟁과 ‘최선’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홀로 ‘짊어진’ 투쟁 속에서, 그러니까 그 누구도 홀로 짊어지라고 강요하지 않았에도, 본인이 고립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고분분투했음에도 결국 세상속에 지독히 혼자가 되어버리는 각자의 투쟁이 있다. 그렇게 60년이라는 긴 세월에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 저주와 같은 고통이 있고, 정확한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조차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 홀로 애쓰고 애쓰다 결국 자신이 아픈지도 모른 채 너무나 아파하고 아픈, 아픈채 고립된 사람들이 있다.

90년대 압구정 로데오와 명동에서 친구들과 카페를 드나들고 저녁엔 메탈 클럽에 놀러가는, ‘오피스 레이디’로서 일하며 월급을 타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고 ‘자신보다 똑똑한’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대는, 그러면서 모은 돈으로 당시 한 달치 월급 값의 이상봉 디자이너의 원피스를 사입는 사치를 부리기도 하는 ‘신여성’. 그것이 엄마가 내게 이야기했던 자신의 20대 모습이다. 그 후로도 그녀는 (그 방식과 방향이 어땠든지 간에)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쫓는, ‘자신의 인생을 홀로 개척하는 꼿꼿한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엄마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정신적 학대에 극심한 우울증으로 평생을 앓아누워 지냈던, 자식들에게 원망과 자기연민을 늘어놓았던 외할머니를 연민하는 동시에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겠다며 그 ‘반대 방향’으로 자신을 몰아붙여 왔던 것 같다. 자식은 부모의 실수를 보고 배우는 존재다. 그녀는 페미니스트로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신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애썼음에도 결국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을 끔찍히도 갈구해 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빈자리를 슬퍼하고, 아버지를 닮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럼에도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고, 아버지의 멋진 모습을 닮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본인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에겐 ‘절대 닮고 싶지 않은 면’만이 보이는 무기력한 어머니의 반대편에는 가정에 소홀하지만 자신의 꿈과 자유를 주체적으로 쫓는 멋지고 능동적인 ‘팔방미인’ 아버지가 계셨다.

외할아버지는 60년대 미군기지에서 헬리콥터 정비기사로 복무하셨는데, 간부의 마음에 들어 미국 본토로 발령 받았으나 남편이 일제시절 일본군에게 끌려간 후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던 외증조할머니는 아들도 잃을수는 없다는 공포에 군에 아들의 발령을 취소해달라는 편지를 매일 수통을 보내셨다. 아주 어린 시절, 어렴풋이 기억하는 외증조할머니의 모습은 치매를 앓는 그녀가 매일 하루 종일 자신이 살던 빌라 입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구부정한, 말라 비틀어진 덩쿨같은 뒷모습이다. 그녀는 평생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냈다. 손녀, 손자, 아들, 그리고 남편.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기다림의 대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다리던 대상’이 찾아와도 반가움과 기쁨은 잠시일 뿐, 그녀는 문 앞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기다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로서 병증을 앓았던 것이다. 그녀가 삶을 달리하고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가족들이 알게 된 충격적 반전. 외증조할아버지는 노역을 위해 일본군에게 끌려간 것이 아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유로운 지식인의 삶을 갈망했던 그는 부모님의 강요로 진행된 원하지 않는 정략결혼으로부터 도망친 것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가정을 꾸려 재일교포로 여생을 보냈다(내 외증조할아버지가 김준평이라니!). 하여튼, 외할아버지의 미국 발령은 취소되었고 그 기회를 잃은 것이 그에게는 오랜 한이 되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와의 많고 많은 ‘대화’중 불평, 불만, 짜증, 하소연이 아닌 유일한 이야기는 그가 젊은 시절 손수 정비한 헬리콥터로 자신이 살던 동네 상공 위를 한바퀴 운전했던(정비기사가 운전을 할 권한이 있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 시절’ 일이다), 그 풍경의 아름다움과 기쁨, 행복, 벅차오르는 순간의 경험이다. 수십 번을 이야기 해서 끔찍히 지겨웠음에도 행복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그러니까 그 이야기 외에는 언제나 분노와 절망을 쏟아내는 말밖에 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당시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그를 마주할 때면 차라리 그 지겨운 이야기를 하시길 바랐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니까, 엄마가 기억하는 본인의 아버지와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존재한다.